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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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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간 나전칠기 전통 이어 온 장인 그 손 끝에서 평생 쓰는 가구가 되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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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르게 변화하는 일상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이 많다. 그저 옛것이라는 이유로, 촌스럽다는 말을 덧입고 말이다. 사람도 그렇게 잊혀져가고 있다. 쓸모없으면 폐기처분 대상이 되는 것은 물건이나, 사람이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도시 볼로냐는 이 흐름을 역행한다. 옛것, 오래된 사람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곳은 경기 불황에도 흔들림이 없다. 그 밑바탕에는 ‘장인’을 대하는 문화가 깊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장인이 쓰는 물건 또한 귀하게 여긴다.


나전칠기 가구공장의 향수


일꾼들이 장롱을 만들고 조개껍데기를 붙이며 바쁘게 돌아가던 공장은 10여 년이 흐른 지금, 자개장을 전문적으로 수리하는 공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자리도 옮겨졌다. 급격한 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인적이 드문 더 깊은 곳으로.


과거처럼 직접생산은 하지 않고 있지만 수 십여 년 전, 공장 안을 채웠던 옻칠 향기는 여전했다. 그리고 그 때 가구를 제작했던 자개장 장인 임종철(64)씨 역시 그대로였다. 반면 임씨 주변에는 빛깔 좋은 새 가구가 아닌 상처를 입은 채 장인의 손길만을 기다리는 빛바랜 가구가 즐비했다.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집집마다 나전칠기 가구, 일명 자개장이 있어야만 ‘산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 자개장의 인기는 경제가 호황일 때 성황을 누렸다. 당시 자개장의 본고장인 통영에서 나전칠기 공예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상경해 가구를 만드는 사람들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임씨도 그랬다. 1963년 3년 과정을 수료하고 서울로 올라와 자개장을 만들기 시작한 그는 지금도 자개장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십여 년 전만해도 가구를 제작하는 일 만 했어요. 이 일은 100% 사람이 해야만 하니까, 사람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죠. 그런데 일이 고되고 힘드니까 자개장을 만드는 젊은이가 없고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벌이가 힘들어졌으니까요. 가구가 흔해지면서 자개장 가치도 같이 떨어졌죠.”


제작에서 수리 전문 업체로 전향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는 “이제 나전칠기 가구를 직접 생산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전 과정이 수공예니까 장롱 가격 자체가 수 천만원을 호가해 사람들이 쉽게 구입하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헌 가구가 새 가구로 변신 


30여 년 전 가구를 구입했던 사람들의 수리 요청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강남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임씨의 손길을 기다리는 가구는 줄을 섰다.


“나무가 갈라지고 깨진 것을 고치고, 자개 장식을 일일이 손보죠. 칠 역시 5번 이상 하니까 보통 10자 장롱 하나를 수리하는 한 달 이상 걸러요. 수리 역시 전 과정이 수공예죠. 말은 고치는 것이지만 수리 과정은 새로 제작하는 가구 공정과 똑 같아요. 그러니 수리하고 나면 수 십 년은 또 쓸 수 있죠. 나이든 분들은 자개장의 멋과 깊이를 아세요. 하하.”


비록 새 가구는 제작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만들었던 가구를 다시 손보는 것 자체가 기쁘다고 여기는 임씨. 그 웃음에는 그가 자개장을 손에서 내려놓으면 그나마 나전칠기 가구의 가치를 잃어갈까 걱정하는 마음도 깔려 있는 듯 보였다.


임씨가 1인 기업으로 운영하는 경선칠기에 수리를 의뢰하면 임씨는 가장 먼저 가구를 분리해서 살핀다.

수차례 칠을 하고 잘 마를 때 까지 기다린 뒤 장식품을 세세하게 손본다.

“살 때 보다 가구 상태가 좋아져요. 자개장은 망가져서 못 쓰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자개장 매력에 빠지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손으로 만드는 가구의 명맥이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아요.”


오래될수록 대접받는 가치


외국처럼 수대에 걸쳐 가업을 물려줄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까운 임씨는 사라져가는 장인과 가구에 대해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큰돈이 아니더라도 자개장 만들어 배고프지 않으면 자식에게 물려 줬을텐데 그렇게 못하죠. 외국에는 나전칠기처럼 수공예 전문 가구가 거의 없어요. 외국 사람이 선물 받으면 굉장히 좋아해요. 지금이라도 보존하고 이어갈 방법이 마련되면 하는 바람이 있죠.(웃음)”

최근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에게 나전칠기로 만든 반상기 세트를 선물해 화제가 됐다.


임씨 말처럼 외국인들에게 인정받는 나전칠기는 오히려 우리들에게 외면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쉽게 만들고, 쉽게 사면 쉽게 버리게 되죠. 자개장은 달라요. 흔하지 않은 명품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요. 지금 수리를 하면 분명 자개장은 사라지지 않고 가치를 뽐내며 오래도록 남을 거에요. 힘들고 어렵게 만들어졌고, 사람의 손길이 닿을수록 빛나니까요.”


출처 : 용인시민신문(https://www.yongin21.co.kr)